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적개심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역사적 재앙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2004년 최고시청률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이후 10년 만인 2014년에 영화 [명량]이 사상 최대 관객을 불러 모으며 다시 한 번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냈다. 2015년 2월부터 KBS-TV에서 방영되는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은 류성룡(柳成龍)이 집필한 또 하나의 임진왜란 전란사로, 역사적 참극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통한의 기록이다.
《징비록》은 7년여에 걸친 전란 동안 조선의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상황을 기록하고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면서, 그러한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 조선의 문제점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후대에 교훈을 주고 있다. 징비(懲毖)는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로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목적으로 저술된 《징비록》은 조선시대 최고의 기록문학으로 평가받는다.
지은이 유성룡柳成龍(1542~1607)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 때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세 되던 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25세 되던 1566년에는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발을 들여놓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좌의정으로 병조판서를 겸하고 있다가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를 총괄했다. 선조가 난을 피해 길을 떠나자 호종했으며, 개성에 이르러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평양에 도착해서는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당했다. 서울 수복 뒤,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선조가 서울로 돌아오자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군비를 강화하고 인재를 배양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이듬해 북인들의 탄핵으로 관직을 빼앗겼고, 그 뒤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저술에 몰두했다. 나중에 조정의 부름을 여러 번 받았으나 일절 응하지 않았다. 주요 저서로 《서애집》, 《영모록》, 《징비록》 등이 있다.옮긴이 김흥식지금은 산업 도시로 바뀌어 버린 군산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강대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을 중퇴했다. 어려서부터 한문이 주는 즐거움에 빠져 온갖 고전을 즐겨 읽었다. 그 결과 우리 고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은 ‘오래된책방’ 시리즈를 비롯해 ‘서해클래식’ 등을 기획했고, 《징비록》을 번역했다. 이 외에 관여해 출간한 책으로 《세상의 모든 지식》 《한국의 모든 지식》(지음) 《1면으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 1, 2, 3》(기획) 《조선동물기》(엮음) 등이 있다.
머리말
들어가는 글
징비록 서
권1
권2
권3
권4
녹후잡기
전란의 조짐 / 왜군의 전략 실패 / 지형 / 성
진주성과 포루 / 군사 전략과 장수 / 부교
군사 훈련 / 심유경의 편지 / 심유경은 유세하는 선비이다
부록
류성룡 · 임진왜란 · 징비록 연표 / 《징비록》 등장인물 관계도 / 임진왜란 · 정유재란 전투 일지
이미지 출처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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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비록 깊이 읽기 차례 】
1 일본의 호전적인 속성을 꿰뚫어 본 신숙주의 《해동제국기》
2 임진왜란의 전초 기지 나고야 성
3 류큐 국과 동아시아
4 진관 제도와 제승방략의 차이: 지역 방어와 대인 방어
5 조선의 포로 송환 정책과 범릉적 사건
6 선조의 의주 몽진 중에 생긴 일과 정권의 교체
7 명나라 군대의 다국적군 성격
8 이순신과 원균의 만남과 갈등
9 신화의 탄생 학익진 전법: 옥포 해전부터 한산도 대첩까지
10 영천성의 수복과 의병 연합군의 활약
11 이여송의 평양성 탈환과 명나라 원군의 이중적인 면모
12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화 조건과 협상 결렬의 전말
13 칠천량 해전의 참패와 정유재란의 발발
14 최후의 전투 노량 해전과 이순신의 죽음
15 괴상한 징조인가, 정책적 무지인가?
16 선정릉 도굴 사건과 중종의 시신 처리 문제
17 선조의 재조지은 강조와 의병장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