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신세대 작가 중 가장 이지적인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는 저자의 장편소설이다. 1930년대에 활동했던 천재 작가 이상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고증을 바탕으로, 이상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한 실제 기록과 그의 작품을 인용하는 한편, 이상의 유실된 데드마스크와 가상의 시, 상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가며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씨기의 실험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이상이 남긴 비밀을 추적해가는 지적 추리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동시에, 진짜와 가짜, 실재와 허구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같은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이 나라에서 사는 일은 극지에서 적도 부근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극지로 되돌아가는 여행과 비슷했다. 이 여행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 내게는 희망이라는 게 생겼다. ‘다시, 봄’이라는 희망. 고향에서 19년을 산 뒤에야 처음으로 서울이란 곳에 가봤고, 한국에서 27년을 산 뒤에야 외국을 처음 나가봤다. 그 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을 통해 세상에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 다른 풍토를 가진 곳이 꽤 많지만, 그럼에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소망과 꿈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영혼은 키가 한 뼘 정도 더 자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땅에서 사계절을 여행하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하얗게 만개한 벚나무 아래의 일이 꽃 지는 나날의 우리를 위로하기를, 말라버린 낙엽에서 뜨거운 여름 햇살을 떠올리기를, 그러다가 어느 날 뜻하지 않은 폭설을 맞고 놀라기를, 언제나 손꼽아 기다린다. 수십 번의 사계절 여행을 통해 등의 책을 펴냈다. 지금은 새 소설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