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시선』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수록하고,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하였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저자 박두진(朴斗鎭, 1916 ~ 1998)
혜산 박두진은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군 안성읍 보개면 봉남리 360번지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 말 ≪아≫라는 동인지에 <북으로 가는 열차>를, ≪웅계≫라는 동인지에 <무제>를 실었다. 그리고 1939년 ≪문장≫에서 <향현>, <묘지송>을 시작으로 <낙엽송>, <의>, <들국화>로 3회 추천을 완료해 등단했다.
1940년 이후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이 더욱 집요해졌다. ≪문장≫이 폐간되고 모국어로 시를 써도 발표할 지면이 없었다. 이 시기에 쓴 것이 후에 ≪청록집≫에 실린 시들이다. 안양에서 광복을 기다리고 있던 박두진은 8 · 15를 맞아 서울로 올라왔고, 을유문화사의 아동문화협회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문장≫ 추천 동기인 조지훈, 박목월을 만났고, 1946년에 ≪청록집≫을 냈다.
6 · 25가 일어나자 박두진은 일단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안성으로 내려갔다. 1 · 4 후퇴 때는 조지훈, 박목월, 이상로, 유주현 등의 문인들과 함께 대구로 내려가 대구 공군 종군 문인단으로 활동했다. 박두진은 전시에 쓴 시를 모아 대구에서 시집 ≪오도≫를 냈다. 당시 쓴 수필들은 서울 수복 직후에 낸 ≪시인의 고향≫에 수록되었다. 서울 환도의 뒤를... 따라 돌아오기 직전 대구에서 박두진은 ≪신천지≫에 <어느 벌판에서>를 발표했다.
박두진은 일제 시대부터 8 · 15, 6 · 25, 4 · 19, 5 · 16 등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경험하며, 정신적 내면적 주체이자, 민족을 구성하는 한 개인으로서 민족적 체험을 시로 승화시켰다. 해방 전에서 그 직후까지 시대의 전환점에서 영원한 이상의 성취를 갈망한 것이 첫 시집 ≪해≫였다면, 6 · 25의 민족적 비극 앞에서 민족의 속죄를 위해 피땀으로 통회한 것이 두 번째 시집 ≪오도≫였다. ≪거미와 성좌≫에는 4 · 19 혁명과 민족적 분노를, ≪인간 밀림≫과 ≪하얀 날개≫에는 5 · 16 전후의 시대적 고뇌를 담았다. 그 뒤에 이어지는 ≪고산 식물≫, ≪사도행전≫, ≪수석열전≫ 등은 자신이 속한 시대 속에서 영원을 향해 전진하는 시인의 고독을 다루었고, 영원하고 보편적인 본질을 탐구했다.
역자 이연의
이연의는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과에서 <신동엽 시 연구: 전통성을 중심으로>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기독교 문학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고 개화기 시가부터 윤동주, 박두진, 박목월, 김현승, 구상, 김남조, 박이도 등 기독교 시인들의 작품을 공부해 왔다. 지금은 경희대학교 취업진로지원처에서 객원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