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를 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하는 활동에서 출발을 하였다고 봅니다. 거기에 더해 점진적인 진화를 거듭합니다. 언어의 영역에서 사고(思考)의 영역으로 점차 확대가 진행됩니다. 사유(思惟)의 확장은 곧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결국 시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됩니다.
시는 또한 시대를 반영하지요. 우리나라의 초기 현대시는 대부분 나라를 잃은 한(限)을 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대부분 [임]이라는 메타포로 표현이 되어 있지요. 한국의 현대시가 발전하고 정착을 하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지만 임을 잃은 슬픔에 담겨있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詩)가 선택하는 언어는 대부분 은유를 포함한 숨김의 미학에 있는데, 시대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일제치하의 시를 접하노라면 슬픔부터 떠오르게 됩니다.
21세기의 시라는 문학은 양면성을 띠고 있습니다. 무거운 얼굴과 가벼운 얼굴. 사실은 그 두 얼굴도 히잡을 뒤집어 쓴 아랍의 여인들처럼 알아볼 수 없는 그늘 안에 있지요. 더는 대중들이 시를 찾지 않습니다. 무거운 얼굴은 너무 무겁고, 가벼운 얼굴은 천박하다고합니다. 공연예술이 대세를 이루고, 시인들은 더 이상 고개를 내밀지 않습니다.
이상화
1901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으며 호는 무량(無量), 상화(尙火, 想華), 백아(白啞) 등이 있다.
작품으로는 <말세의 희탄>(1922), <단조>(1922)를 비롯하여 <가을의 풍경>(1922), <이중의 사망>(1923), <나의 침실로>(1923)로써 이름을 떨쳤다.
그의 나이 40세에 독서와 연구에 몰두하여 <춘향전>을 영역하고, <국문학사>, <불란서시정석> 등을 시도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43세에 위암으로 사망하였다.
노천명
1912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6 · 25전쟁 때는 미처 피난을 하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있다 북에서 온 임화, 김사량 등을 만났던 일과 해방직후 문학가동맹에 가담한 죄로 20년형을 받고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화여전 재학 때인 1932년에 시 밤의 찬미,포구의 밤 등을 발표하였고, 그 후 눈 오는 밤, 사슴처럼, 망향등 주로 애틋한 향수를 노래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1957년 재생불능성 뇌빈혈로 투병 중에 별세하였다.
박인환
1926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1949년에는 김병욱 · 김경린 등과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하였으며, 1950년에는 김차영 · 김규동 · 이봉래 등과 피난지 부산에서 동인 후반기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을 낸 뒤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단조
가을의 풍경
나의 침실로
이중의 사망
마음의 꽃
독백
비음
빈촌의 밤
조소(嘲笑)
어머니의 웃음
...
가을날
감방 풍경
개 짖는 소리
고독
고별
구름같이
국경의 밤
귀뚜라미
그네
길
..
이국 항구
일곱 개의 층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장미의 온도
지하실
태평양에서
행복
회상의 긴 계곡
신호탄
어떠한 날까지
...